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일본군 위안부 (문단 편집) == 기타 == * 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한 고 김학순 피해자 이전에 1975년 10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자신의 과거를 밝힌 배봉기 피해자에 대해서 알려지지 않다가 2018년에 들어서서 조명되고 있다.[[https://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20&aid=0003161259|#]] * 일본에서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http://daishi100.cocolog-nifty.com/photos/uncategorized/2018/11/10/19910811_asahi_uemura.jpg|보도]]한 전 [[아사히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로. 이 기사로 자신은 물론 딸의 신상까지 털었다. 게다가 대학교수 임용도 막혔다고 한다. 다행히 현재 [[가톨릭대학교]] 초빙교수로 활동중이다. 최근 자신의 경험 바탕으로 책을 냈다.[[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8707870|#]] * 2004년에는 [[네띠앙]]이 연예인 [[이승연]]과 계약을 맺고 위안부 컨셉으로 누드화보를 찍어서 상상 이상의 비난을 받은 적이 있다. 이승연은 위안부 피해자들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사죄하며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며칠 후 바로 네띠앙에서 촬영 강행을 선언하며[* 물론 "불순한 의도는 절대 없으며 이번에도 비판받는다면 화보자료를 전량 폐기하겠다."라고 실드는 대충 친 상태에서. 그리고 1년 후 네띠앙은 천벌을 받았다. 자세한 것은 [[네띠앙]] 문서로.] 다시 한 번 비난받았다. * 일본은 그 외에도 [[특수위안시설협회|패전 직후 주일미군을 위해 또 위안소를 만들었다가 미군에게 대차게 까이고 폐쇄하는 병크를 저지른 바 있다]]. * 일본에서는 종종 "군대에 여자가 붙는 것은 당연한 속성"이라면서 위안부 문제의 심각성을 덜 속셈으로, 미군의 성범죄/매춘 통계나 한국전쟁 당시 [[양공주]]와 [[한국군 위안부]], 혹은 [[베트남 전쟁]] 당시에 생겨난 한국-남베트남 혼혈인 [[라이따이한]]등을 예시로 들며 일본군 위안부와 비교한다.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8_1953_01_11_0050|링크 1]], [[http://www.history.go.kr/url.jsp?ID=NIKH.DB-dh_028_1953_02_16_0060|링크 2]]. 위안부 문제는 일본만이 저지른 잔악행위가 아니라 전쟁이면 으레 생기는 비극이라는 논리. 당연히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이다. * 12월 18일 [[이명박]] 대통령이 [[교토]]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군 군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결단을 [[일본 정부]]에 거듭 촉구했다. [[http://news.kbs.co.kr/politics/2011/12/18/2405897.html|이 대통령 "日 군대 위안부 해결 용기 가져야"]] * 위안부 문제 때문에 일본의 유력한 정치인이었던 [[아베 신조]] 총리가 삽질을 거하게 푸고 총리 취임 1년도 안 되어 떨어져 나갔다. 그리고 2012년 [[https://news.v.daum.net/v/20130503173507509&RIGHT_COMM=R6|다시 총리가 되어 망언을 일삼고 있다]]. * 2012년 1월 8일 주한 일본 대사관에 화염병을 던진 중국인 류창이 검거되었다. 그는 자신의 외할머니가 일본 때문에 피해를 입은 한국인 위안부였으며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합의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이 [[http://kr.news.yahoo.com/service/news/shellview.htm?articleid=2012010817510725014&linkid=4&newssetid=1352|야스쿠니 신사에 불을 질렀다]]고 주장했다. 한국에서 징역 10개월의 형기를 마치자 [[일본 정부]]에서는 [[야스쿠니 신사]]에 방화한 죄는 일본에서 처벌받아야 한다며 일본으로 인도해줄 것을 요청했고 [[중국 정부]]에서는 그가 일본에서 정치범으로 처벌받을 상황을 우려하여 중국으로 송환해줄 것을 요청했으며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10344012&cloc=olink|한국 정부는 중국의 요청을 받아들여]] 그를 중국으로 송환했다. * 2012년 5월 5일,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95406|'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이 서대문구에 개관되었다]]. 당초엔 [[서대문구]]의 독립공원 내에 건립될 예정이었으나 광복회 등 독립 유공자 단체의 반발로 무산되었다. 광복회의 반발 내용을 요약하면 '순국 사실로 애국심을 고취하려는 의도가 주 목적이 되는 독립공원에 일본에게 별 항거 없이 끌려갔다는 내용의 사료를 전시하려는 박물관은 성격적으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일리가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그럼에도 광복회 등 독립 유공자 단체가 내세운 의견은 당시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왜냐하면 피해를 받았다는 사실로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 또한 애국심을 고취하는 한 방편임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 2012년 6월 9일, [[일본 정부]]는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워진 일본군 위안부 기림비가 [[http://www.yonhapnews.co.kr/international/2012/06/09/0602000000AKR20120609014600073.HTML|외국 공관의 존엄침해 금지를 정한 빈 조약에 저촉된다는 공식 견해를 발표했다]]. * 2012년 6월 18일, 21일에 동일인으로 추정되는 일본인이 위안부 평화비 앞에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2&oid=025&aid=0002207862|'다케시마는 일본땅'이라고 쓴 말뚝을 박고 동영상을 찍었다]]'''. 말뚝을 설치한 사람은 극우일본 정치인 스즈키 노부유키로 밝혀졌다. 문제는 [[http://joongang.joinsmsn.com/article/976/8544976.html?ctg=1300&cloc=bulk|주변의 경찰이 말뚝을 설치하는 만행을 하는 동안 방관하고 있었고]] 처벌하려 해도 스즈키는 이미 일본으로 튀어버려 수사도 힘든 상태라는 점이다. 자세한 것은 [[말뚝테러 사건]] 문서로. * 2012년 7월 8일, 미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이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7/09/2012070900167.html|'일본군 위안부(comfort women)'라는 표현 대신 '강제적인 일본군 성 노예(enforced sex slaves)'라는 명칭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 2012년 8월 9일, [[KBS]] 드라마 《[[각시탈(드라마)|각시탈]]》에서 위안부 문제를 묘사하였다. 관동군의 요청을 받아 간호부 모집으로 속여 조선인을 총독부가 조직적으로 모집했다는 내용이다. 특히 [[조선총독부]]가 공식적으로 개입을 했음에도 민간업자를 위장하여 기록을 남기지 않으며 '뒤에 문제가 생기더라도 우리는 한 적 없다라고 주장하면 된다'라는 내용을 담아 현재의 일본 상황을 비판하였다. * 2013년 3월 1일을 앞두고 [[http://www.youtube.com/watch?v=560bR8-cNsI&ytsession=1q6O58jzYoIom843IO9K1aNImY13jN5iEdbcJIXsei6rmWwI1Jb0_J0X0ToQR26PAKDqvqsqaisKyPPVu_3aRI0wSp7VykOEIDmUFIPEEpr3C9j4H81IesOE9h2si18s7_dwitIJn1xDN_qHQSDbAxVk7Yry_92L9cc5ZPKEz-s_IFBdf2kROUErZ9vrN6VQS2T7YZBnWnhO4ayzTmtTTqU1F7BfnkGGUTaoE5vHxtViedZgzKbOPIbbR8LRFSGA99dYRgJT3ixvl6emcsf3KbOzBbOt7H7i|이런 노래]]가 나눔의 집에 배달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유튜브]] 측에서 규정 위반으로 삭제한 상태. [[http://www.youtube.com/watch?v=MN9vjBLYyaQ|1]], [[http://www.youtube.com/watch?v=XwE1eIf5RTw|2]], [[http://www.youtube.com/watch?v=k__PpAxRjKQ|3]], [[http://www.youtube.com/watch?v=us4io3uRZHI|4]], [[http://www.youtube.com/watch?v=EQgwN4UX9Us|5]] 종편 채널 a가 이 사건에 대해서 취재했다. 앵난무류(스크램블)이란 인디 밴드 작품이며 일본 현지에까지 가서 취재했지만 끝내 인터뷰에 응하진 않았다.[* 연락은 닿았지만 100만엔 주면 생각해 보겠다고 조롱할 뿐이었다.] 그리고 일본 현지에서도 평이 좋지 않다. 동영상에서 인터뷰한 일본 여성이 말한 대로 나라 사이의 문제를 떠나서 노골적인 폭언을 하는 것도 문제지만, 구 일본군의 위안부 제도는 근본적으로 여성의 가치를 심하게 말하자면 '''오나홀''' 정도로 떨어뜨리는 비인간적인 제도였기 때문이다. 위안부 제도로 상대적으로 피해를 덜 입었던 서양인들도 싫어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 2013년 5월 21일, UN CESCR(사회권 위원회)에서 [[일본 정부]]에 대해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5/22/0503000000AKR20130522018000073.HTML?template=5565|일본 내 혐한파의 일본군 위안부 출신 피해자들에 대한 모욕을 막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 2013년 9월 2일, [[2012년]]도에 당시 집권당이었던 일본 민주당이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상당히 '''전향적인 사과계획'''이 있었다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http://m.khan.co.kr/view.html?artid=201310081647071&code=910302&med_id=khan|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 직전까지 갔었다]] 주 내용은 주한 일본대사가 일본 정부를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하고, [[노다 요시히코|노다 총리]]가 [[이명박|이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인도적 지원 조치를 설명하며, 보상금 등 인도적 지원은 100% 일본 정부 자금으로 충당한다는 3가지 방안이었으나 [[이명박 정부]]가 이를 거부했다고 한다. 당초 위안부들에게 배상의 목적으로 설립된 [[아시아여성기금]]이 일본 정부의 책임 회피를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들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을 목표로 추진한 것. 다만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으로 법적 배상 책임은 종료하였다는 입장은 유지했다. 즉,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가 직접 배상하는 것인 만큼 실질적인 배상으로 받아들였으면 한다"'''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위안부 지원단체와 외교통상부는 '''"법적 책임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며 반대하였고 일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이후 [[2012년 이명박 대통령 독도 방문|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인하여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자민당이 집권하게 되자 일본의 사과 계획도 물 건너갔다. 이에 대해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센터 소장은 "양쪽에서 좀 더 신중히 검토하였어야 했다, 일본도 자민당이 사과 계획을 세울 리 없고 한국도 그때보다 사과 요구 수준을 높인 만큼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없어졌다"라며 안타깝다는 입장을 보였다. [[http://mainichi.jp/select/news/20130902ddm007030020000c.html|관련 기사]] 하지만 저 당시 일본측이 제의한 '사사에안'은 박근혜 정부 시절 합의된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한일 위안부 합의]] 보다도 세부적인 내용에서 격이 더 낮은 합의안으로 일본 총리도 아닌 주한 일본 대사가 일본 정부를 대표해 피해자들에게 사죄한다는 부분만 봐도 격이 많이 낮은 사죄안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박근혜 정부 시절 맺어진 한일 위안부 합의에서는 아베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일본 정부를 대표해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함"이라고 사죄했다.] 그런 점에서 봤을 때 저 당시 [[이명박 정부]]가 '사사에안'에 맞춰서 한일간의 위안부 합의를 타결 했다면 현재의 [[2015년 한일 위안부 문제 협상 합의|한일 위안부 합의]] 이상으로 엄청난 비난과 전국민적인 비판을 받았을 것이다. * [[프랑스]] 앙굴렘 만화제에서 일본이 위안부 피해자 기획전 부스를 취소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거절당하고 '''[[역관광|도리어 위안부 문제를 왜곡한 만화부스를 철거]]''' 당했다.[[http://youtu.be/FV-yyagzuAQ|위안부 만화 '관심과 지지'. 일본 작품은 '철거' / YTN]][* [[프랑스]]는 [[영국]], [[독일]]과 함께 유럽을 이끌어가는 국가이자 일본과 더불어 [[G8]]의 멤버이기도 하다. 당연히 일본의 이런 압력이 불쾌할 수밖에 없다. 참고로 저 부스는 일본 극우지인 WiLL이 후원하기도 했으며 참여 삽화가중에는 [[소년탐정 김전일]]의 작화담당으로 알려진 [[사토 후미야]]도 있다.] * 와패니즈들의 활약 덕분에 [[유튜브]] 등의 서양권 사이트에서 [[토니 마라노]]의 소녀상 조롱 동영상 등 일본의 의견을 지지하는 동영상이나 자료가 큰 지지를 받고 추천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괴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여러 댓글에도 피해자들한테 성적인 모욕을 내뱉고 이에 반박하는 한국 네티즌들에게 증거가 없다는 등, 일본 네티즌들이 오히려 정확한 증거들 들고 온다는 등 일본 측을 옹호하는 주장들이 판치고 있다. * 일본에 일본군 위안부를 외면하는 사람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 내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가장 포괄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곳은 와세다에 위치한 wam(Women's Active Museum on War and Peace, 女たちの戦争と平和資料館, 여성들의 전쟁과 평화 박물관)이 있다. [[http://wam-peace.org|홈페이지]] 학예원인 와타나베 미나는 일본 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 시키고 일본을 올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평. * 2015년 2월 28일과 [[삼일절|3월 1일]], 2회에 걸쳐 [[KBS 1TV]]에서 [[8.15 광복]] 70년 특집극 [[눈길]]을 방영하였다. 1944년 어느날, 15살 소녀 최종분([[김향기]])과 강영애([[김새론]])가 만주 지역 위안소로 끌려가 그 곳에서 겪는 처참한 광경을 담고 있다. 직접적인 겁탈하는 장면은 제하고, 그 외에 여러 위안부들이 겪었을 만한 내용들이 극 중에서 전개되어 간다.[* [[임신]]을 하지 못하게 약을 먹이고, 썼던 [[콘돔]]들을 위안부들이 직접 세척한다. [[성병]]에 걸려 쓸모가 없어졌다고 여겨진 위안부를 즉결총살하고, 급기야 전황이 불리해져 진영 철수 시 조선인 위안부들을 전부 총살시키고 증거를 파기하는 등 적나라할 수 있는 내용들을 영상에 담고 있다.] 거기에 아역배우로는 정평이 난 김새론과 김향기가 열연을 하여 한층 더 극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러한 과거의 소녀들의 모습이 현재의 나이 든 최종분([[김영옥(배우)|김영옥]])과 교차되어 살아남은 그녀의 삶과 애환을 보여준다. * 일본의 한 그래픽 디자이너 [[https://m.facebook.com/dai.inami|이나미 다이]]가 위안부 소녀상을 조롱하는 "Sexy Lady"라는 이미지를 올렸다. [[:파일:keFeMvE.jpg|# (주의)굉장히 성적이고 혐오스러우며 모욕스럽다.]] * 2015년 6월 [[인천광역시]] 부평구의 한 고등학교의 어느 동아리는 '''위안부 피해자 어르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응원하고자 하는 의도'''와 동시에 '''[[아베 신조]] 총리의 진심어린 사과를 요구하는 의미'''에서 '''전교 학생들이 다같이 주한 일본 대사관에 자필 엽서를 보내는''' 과감한 캠페인을 열었다. * 2016 [[미스 유니버스]] 대회에, 2007년도 우승자인 [[일본]]의 모리 리요(森理世)가 심사위원으로 참가했다. 모리는 [[한국]] 대표 [[김제니#s-2]]에게 한 질문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것이었다. 여성인권과 권리증진을 표방하고 있는 국제대회에서 민감한 정치외교 문제를 일부러 끄집어내는 행위는, 떨어뜨리려고 한 질문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게다가 심사위원이 이해당사국 출신이란 점 때문에, 위압적인 분위기까지 연출되었다고. 이에 대해 모리는 "어떤 인종으로부터 어떤 질문을 받을지 모르는 거니까, 그런 상황에서 얼마나 현명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가 심사 포인트"라는 망언을 했다. * 2016년 12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http://www.munjanet.com/front/productlist.php?code=007|피해자들의 손글씨로 만든 폰트]]가 나와서 무료배포되고 있다. * 2016년부터 대한민국의 프로야구단 [[SK 와이번스]]가 [[8월 14일]] 즈음 개최되는 홈경기에서 일본군 위안부 관련 행사를 [[http://www.skwyverns.com/Wyverns/media/news/news_view.asp?num=3380&topYN=N&page=8&part=&item=&idx=18564|진행한다.]] 이어서 2017년에는 대한민국 정부가 [[8월 14일]]을 위안부 기림일로서 공식 지정한 것을 기념하여 새로운 유니폼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SK 와이번스/유니폼#s-3.15|해당 문서]]로. * <한국방송>([[KBS]])이 태평양전쟁이 진행 중이던 1944년 9월 중국 윈난성 쑹산에서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가 미-중 연합군에게 구출되는 장면을 담은 희귀 영상을 발굴해 28일 공개했다. 이 영상 속에는 만삭의 위안부로 알려진 고 박영심 할머니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간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문서와 사진은 다소 있었지만 영상은 희귀한 편이라 사료로서의 가치가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8&aid=0002499080|만삭의 위안부 담긴 희귀 영상 공개연합군에 구출되자 만세]]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3005251|만삭 위안부 구출 순간 "만세!"···영상으로 보는 그날의 소녀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56&aid=0010843591|[풀영상] 고 박영심 할머니 육성으로 듣는 만삭 위안부 구출 장면]] * 일제강점기 당시 한국에서는 딸들을 위안부로 보내지 않기 위해 일찍 시집을 보내거나, 여유가 되는 집에서는 아예 [[구제고등여학교|고등여학교]]를 보냈는데, 시집간 부녀와 학생들은 위안부로 끌고 가지 않았기 때문. * 2021년 2월 유소년 시절을 일본에서 보내고 일본 정부 훈장인 '욱일장'을 받은 [[존 마크 램지어]] 교수[* 공식 직함은 '[[미쓰비시 중공업|미쓰비시]] 교수'이다.]가 [[존 마크 램지어 위안부 논문 게재 논란|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라 비난하는 논문을 발표하여 큰 논란이 발생하였다.]] [[https://www.yna.co.kr/view/AKR20210212024200009|#]] 일본 회사법을 전공한 해당 교수는 이전부터 [[산케이 신문]] 계열의 한 영문 매체에서 위안부 피해 사실이 '순수한 소설'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미쓰비시 강제동원 노동자에 대해선 "전쟁터가 아닌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 운이 좋았다"라며 지속적으로 일본 우익들의 주장을 전파해왔는데 알고 보니, 논문을 쓴 램지어 교수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 중공업]]이 낸 기금으로 하버드 대학에 채용된, 대표적인 친일학자였다. [[https://imnews.imbc.com/replay/2021/nwdesk/article/6076700_34936.html|#]] 애초에 논란이 많던 해당 교수가 이번에는 아예 자신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위안부 문제를 왜곡하여 비난하는 논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에대해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 소장을 지낸 카터 에커트 한국역사학 교수는 하버드 크림슨에 e메일을 보내 '''"램자이어의 논문은 비참할 정도로 실증적으로, 역사적으로, 도덕적으로 결함이 있는 논문"'''이라고 지적했으며, 심지어 램자이어 교수의 제자도 문제를 제기했다. 1990년대 그의 수업을 들었던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한일 역사학 교수는 해당 논문의 편향성을 지적했으며, 하버드 크림슨에 따르면 더든 교수는 초고를 봤을 때 "충격적이었다"면서 '''"일본 정부 입장을 반박하는 주요 근거들이 대거 누락됐고, 심각한 논리적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알렸다"'''고 밝혔다. [[https://news.joins.com/article/23987696?cloc=joongang-article-clickraking|"'위안부는 매춘부' 논문, 비참한 결함" 하버드 교수들 반격]] 이에 따라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게재하기로 한 국제 학술 저널이 우려를 표명하고 자체 조사에 착수했다. [[http://www.hani.co.kr/arti/international/international_general/982772.html|제동 걸린 위안부는 매춘부 논문 게재해당 저널 큰 우려]] 그러나 이와 관련해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은 램지어 교수를 옹호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대조를 이루었다. [[http://news.kbs.co.kr/news/view.do?ncd=5116524&ref=A|하버드 교수 위안부 논문에 우려 제기돼 조사日 역사학자 취소 말아야]] * 위안부 문제는 과거에는 주로 한국과 일본 간의 문제'''였'''다. 위안부 문제가 국제사회의 전폭적인 관심과 지지를 얻게 되는 시점은 1990년대 코소보와 르완다 등에서 대규모로 발생한 조직적인 강간을 계기로 국가 또는 분쟁당사자에 의해 자행된 여성에 대한 폭력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했다. 2000년 유엔 안보리 처음으로 무력분쟁 지역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폭력 근절, 분쟁예방 및 해결과정에서의 여성 참여 확대 등을 내용으로 하는 1325호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이 시점을 기점으로 위안부에 대한 국제적인 관심도가 높아졌다. 거기에 최근 [[미투 운동]]의 열풍과 [[페미니즘]]의 진전으로 인해 위안부 문제는 이제 단순히 한국과 일본 간의 외교나 과거사 문제가 아니라 여성의 인권, 성폭력이라는 국제적인 문제로 발돋움했다. 최근 [[존 마크 램지어]] 교수의 발언에 미국/유럽등 국제적인 비판들이 쇄도하는 이유가 바로 이러한 국제적인 배경에 따른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